2026년 10월

  •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직업적 소명의식은 죽음 앞에서도 유효한가?

    『남아 있는 나날』에서 스티븐스는 부친이 사망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직업윤리를 지키느라 부친을 돌보지 않는다.

    직업적 소명의식에 대한 아버지와 아들의 공감대를 이해한다고 치자. ‘아버지도 그것을 바랐을 것이다’라는 아들의 생각까지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고통과 압박의 시간을 보냈음에도 이 시련을 극복했다는 뿌듯함까지 느꼈다는 부분은 충격적이었다.

    부친에게 이입해 보면, 아무리 직업적 소명의식이 뚜렷하다 할지라도 한낱 인간에게 닥치는 죽음의 그림자를 벗어나기 위한 명분으로 사용하기에는 온전하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관점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자신의 죽음을 다른 더 거대한 명분으로 포장한다면, 그것이 죽을 때 위안이 될까 싶기도 하고.

    AI신념은 죽음 앞에서도 위안이 될 수 있는가?

    스티븐스의 아버지에게 직업적 소명의식은 평생 자신의 삶을 지탱해 온 가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생 어떤 신념을 지켜왔다는 사실이 죽음의 순간에도 그 신념을 절대적으로 유지하게 만든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평생 자신을 지탱했던 가치들의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직업적 품위보다 아들의 얼굴을 한 번 더 보는 것이 중요해질 수도 있고, 반대로 마지막까지 자신이 믿었던 질서를 지키는 일이 평온을 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실제로 무엇을 원했는지와 아들이 아버지도 원했으리라고 믿는 것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살아갑니다. 직업, 가족, 신념, 종교 등이 그 근거가 될 수 있고, 그러한 의미는 실제로 고통을 견디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삶을 지탱해 준 의미가 어느 순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죽음 앞에서 거대한 명분이 위안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그 명분을 위해 살아온 삶이 과연 자신의 선택이었는가 하는 문제는 분리할 수 있을까요?

    첨언. 파편화된 시대에 신념을 갖는다는 것

    요즘 시대엔 역사적 사명이니 신념이니 하는 것은 쉽게 깨지곤 한다. 그런 면에서 독자가 ‘집사로서의 명분’이나 ‘집사로서의 신념’에 집중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반대라고 해도 쉽게 회의주의, 허무주의, 실존주의, 구조주의로 빠지기도 쉽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모든 것이 파편화되는 요즘 세상에서 타인이 이해할 수는 없어도 각자의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인간’에 집중한다면 시대착오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신념이 쉽게 깨어지는 세상에서 인간은 무엇을 믿고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종교가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존재했다는 것이 ‘죽음 앞에서 거대한 명분이 위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방증한다고 본다.

    내게는 중요한 발견이다. 인간이 의미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오류일지는 몰라도, 한 인간의 삶을 지탱해 줄 원동력이 어떤 형태로든 존재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난 오히려 ‘인간이 신념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는 생각도 든다.

    앞서 언급했듯이 ‘신념이 쉽게 깨어지는 세상’에서 나와 같은 연약한 인간이 명분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AI신념은 어떻게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는가?

    종교가 오랫동안 존속해 왔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근거입니다. 그것이 곧 죽음 앞에서 위안을 준다는 증명은 아니지만, 인간이 자신의 유한한 삶을 더 큰 질서 안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를 이어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신념이 쉽게 깨어지는 시대의 문제는 우리가 믿을 만한 것을 찾지 못한다는 데 있을까요, 아니면 믿음이 깨어질 가능성을 견디지 못한다는 데 있을까요?

    여기서 신념과 확신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념은 어떤 명제가 반드시 참이라는 확신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틀릴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기로 선택한 가치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확신하지 않더라도 인간을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삶에 객관적인 의미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일을 가치 있게 여기며 지속할 수 있습니다. 의심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유지되는 믿음은 그 나름의 강인함을 갖습니다.

    그러나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만으로 그 가치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시간과 실천이 개입합니다.

    어떤 가치를 위해 반복해서 선택하고, 때로는 다른 가능성을 포기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그 가치는 단순한 생각을 넘어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일부가 됩니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 살아온 시간이 거꾸로 그 신념에 무게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스티븐스의 아버지에게 집사로서의 품위가 중요했던 것도 평생 그 믿음에 따라 살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일은 자신의 삶 전체를 부정하는 일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념을 갖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처음부터 평생 흔들리지 않을 거대한 명분을 발견하려 하기보다, 지금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실제로 삶의 일부를 내어주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종교나 역사적 사명처럼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선택과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축적된 경험이 신념을 단순한 관념과 구별해 줍니다.

    물론 오래 지켜온 신념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닙니다. 삶을 바쳐왔다는 이유만으로 그 믿음을 포기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스티븐스의 삶은 바로 그 위험을 보여줍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신념을 얼마나 강하게 믿느냐뿐 아니라, 그 신념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만드는가일 것입니다.

    첨언. 선택의 총합은 하나의 목적이 될 수 있는가?

    ‘시간과 선택, 행동이 만들어 낸 총합이다’라는 설명을 반박할 만한 전개는 없을 것이다.

    정말로 매 순간의 선택의 근원이 하나의 점으로 수렴할 만한 여지는 없는 것일까? 반대로, 매 순간 현재에 집중하며 산다는 것으로 인간은 과연 만족하는 존재일까?

    나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기억되기 위해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인간이 ‘Seize the day’, ‘카르페 디엠’과 같은 말들로 인생, 혹은 미래, 혹은 죽음을 앞두고 의미를 찾는 행위를 멈추거나 후회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네 말대로 ‘만족’이라는 것을 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럼 내가 ‘나라는 인간’으로 오랫동안 회자되거나 기억되기 위한 목적으로, 나를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한다고 치자. 그것이 내가 가지는 신념이 될 수도 있겠지?

    내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사람으로 회자되고 싶은 것이다.

    AI자신의 삶을 하나의 의미로 남긴다는 것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욕망 역시 삶을 지탱하는 신념이 될 수 있습니다.

    앞서 신념은 시간과 선택, 행동이 축적되면서 형성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우리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과거의 경험에 의해 형성되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며 현재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미래에 도달하고 싶은 하나의 모습이 현재의 선택들을 조직하는 원리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죽은 뒤의 일에도 의미를 부여한다는 사실입니다. 죽은 사람은 자신의 평판을 직접 경험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가 반드시 살아 있는 동안의 만족으로 환원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구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억되고 싶은 것,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 것,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서로 다릅니다.

    특히 마지막 두 가지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정의롭게 사는 것과 정의로운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남아 있는 나날』의 달링턴 경이 그러한 사례입니다. 그는 자신이 믿는 명예와 도덕적 책임에 따라 행동했지만, 훗날 전혀 다른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됩니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다면, 그 성취 여부를 타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죽은 뒤에도 남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자신에 대한 기억을 남기는 것과 자신이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를 남기는 것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자신의 이름이 기억되어야 하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태도와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이어진다면, 이름이 잊힌 뒤에도 그 가치는 남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불멸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유한한 삶이 죽음 이후의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보여줍니다.

    결국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는 같은 질문일까요?

    이 차이는 스티븐스가 자신의 삶을 회상하고 정당화하는 방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 today’s bean

    today’s bean

    Kenya Eaagards Estate

    Always August · 케냐 · Central Province, Kiambu County · Mainly SL28 & SL34 · Washed

    로스터 표기 Quince, Rhubarb, Hibiscus, Cranberry, Blackcurrent

    1. 1회차 2026-10-26 · Hario Neo (TH-3) · Comandante 28 · 17g · 272g · 1:16 · 93℃ · 2:50

      내가 느낀 향미 나무, 맥아, 갓 벤 풀, 허브

      메모 고도 1,600 – 1,800m
      잎차의 느낌이 강하다.

    예전 나무사이로에서 많이 마셔보던 느낌의 무겁고 다크한 느낌.

    추출시간을 늘려서인지 떫으며 쓴맛이 후미에 살짝 있고, 떫음은 약간 오래 감.

  • today’s bean

    Alo Hurro

    Always August · 에티오피아 · Hurro, Nensebo, West Arsi · Heirloom · Traditional Washed

    로스터 표기 Korean Cherry, Red Apple, Peach, Jasmine, Lemon, White Tea

    1. 2026-10-23 · Hario Neo (TH-3) · 코만단테 28 · 17g · 272g · 1:16 · 3:10

      내가 느낀 향미 견과 향, 체리, 레몬, 재스민

    2. 2026-10-23 · Hario Neo (TH-3) · 코만단테 28 · 17g · 272g · 1:16 · 3:10

    3. 2026-10-23 · Hario Neo (TH-3) · 코만단테 28 · 17g · 272g · 1:16 · 3:10

    오후 커피 간단히 내린 건데, 시험용이기도 함.

  • today’s bean

    today’s bean

    콜롬비아 리오 아타 게이샤 워시드

    ROASTIN3

    분쇄 컬러 : 93.5 agtron Extremely Light

    RIO ATA — PLANADAS, TOLIMA

    콜롬비아 중남부 톨리마 지역의 플라나다스는 안데스산맥의 가파른 산비탈과 깊은 계곡이 이어지는 커피 생산지입니다. 리오 아타(Rio Ata)는 이 지역을 흐르는 아타강(Río Atá)의 이름에서 유래한 커피로, 해발 1,800~1,900m의 고지대에서 재배된 게이샤 품종을 사용합니다. 강 주변의 산비탈에 자리한 소규모 농가들은 계곡의 따뜻한 공기와 네바도 델 우일라 산지에서 내려오는 서늘한 공기가 교차하는 독특한 미기후 속에서 커피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플라나다스는 오랜 기간 이어진 콜롬비아의 무장 분쟁과 깊이 연결된 지역이기도 합니다. 한때 불안정한 환경으로 인해 농업과 지역 경제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후 커피 생산자들의 협력과 고품질 커피에 대한 투자를 통해 국제적인 스페셜티 커피 산지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플라나다스는 뛰어난 게이샤 커피를 생산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Cup of Excellence와 같은 국제 품질 대회에서도 여러 생산자가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QIMA COFFEE — COMPETITION & 90+ SERIES

    이번 리오 아타 게이샤는 퀴마 커피(Qima Coffee)의 Competition & 90+ Series에 속한 커피입니다. 퀴마는 생산자와 직접 협력하며 커피의 수확 이후 가공과 품질 관리, 유통까지 연결하는 스페셜티 커피 기업입니다. 2020년 콜롬비아에 현지 법인을 설립한 이후, 소규모 생산자들이 가진 커피의 잠재력을 보다 높은 품질과 지속 가능한 소득으로 연결하기 위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Competition & 90+ Series는 퀴마가 선보이는 고품질 커피 컬렉션으로, 게이샤와 시드라, 치로소, 수단 루메 등 개성 있는 품종을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전통적인 생산 방식에 정교한 수확 후 가공 기술을 결합해 각 품종과 생산지가 가진 향미를 선명하게 표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리오 아타는 이러한 퀴마의 접근 방식과 톨리마 고지대의 재배 환경이 만난 커피입니다.

    Flavor: Honeysuckle, Jasmin, Lemonglass, Honey, Skilly

    코만단테 28클릭, Neo + TH-3, 17g, 274ml (1:16), 스위치 닫고 블루밍, 중간에 낮은 온도로 침출, 3분 15초.


    첫 향에 바로 Spicy함이 느껴졌다.

    작년 재작년에 유독 겪었던 고추, (말린) 토마토 노트가 나올라 오랜만의 두려움을 잠깐 느꼈는데, 이내 자스민 계열의 익숙한 꽃향이 났다.

    하지만 첫 맛은 예전 강했던 말린 토마토 느낌의 원두들의 초입과 닮아서 원래 맛을 느끼기엔 교란이 심했다. 허니 서클(인동초)이 뭔지 모르겠어서 센서리 휠 페이지를 찾았더니 유료화가 되었네?

    좀 식으니 산미가 느껴져서 레몬그라스의 표현이 이해가 갔다. 처음 내리는 것이라 단맛을 좀 올리는 방법이랑 내가 스파이시로 느끼는 것의 원물을 찾아 매칭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생산 역량의 확산, 소유의 집중

    AI가 생산의 문턱을 낮추는 시대. 그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누구의 소유일까?

    – ‘AI 시대, 새로운 복지가 필요하다’를 읽고


    7월 발표된 OECD의 보고서엔 이젠 특별해지지 않은 내용이 있다.

    바로, ‘AI 사용 비용은 낮아지고 있지만 핵심 기반시설인 하드웨어와 데이터는 소수 기업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더 많은 사람이 주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면

    모델의 성능은 높아지고, 선택할 수 있는 공급자는 늘어나고, 가격은 하락했다. 사람들은 더 적은 비용으로 강력한 AI를 도구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작은 팀이 하나의 소프트웨어를 서비스한다고 보면, 기획부터 디자인, 구현, 테스트, 운영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별 전문적인 인력과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소프트웨어에 한정해서 적어도 AI는 이 과정에 필요한 인력과 시간의 부담을 크게 낮출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긍정적인 미래가 그려진다.

    생산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인력과 초기자본의 문턱이 낮아지고, 새로운 생산자들이 등장한다. 중소기업이 이전보다 더 넓은 영역에서 경쟁하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업과 그에 따른 자본가가 등장할 수도 있다.

    생산 역량이 더 많은 주체에게 확산되는 미래다.

    그러나 생산하기 위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다.

    AI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그 서비스를 실제로 작동시키는 자원이 필요하다. 반도체, 데이터 센터, 클라우드 인프라, 데이터와 모델, 그리고 사용자를 마주하는 플랫폼까지. 이러한 기반시설은 누구나 쉽게 구축하여 관리할 수 없다.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 규모의 경제, 기술이라는 높은 진입장벽이 있는 것이다.

    핵심 기반시설을 소유한 기업은 사용료나 수익에 연동된 계약을 통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가치의 일부를 확보할 수 있다. 높은 전환비용은 이러한 기업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

    데이터 역시 중요한 생산 자산이다. 생산자가 AI를 활용하는 과정 자체가 데이터화된다. 이 데이터가 서비스 개선에 쓰인다면 생산활동이 플랫폼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이 두 변화가 서로 다른 층위에서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생산 역량의 활용핵심 기반시설의 소유·통제
    개인과 소규모 기업의 접근성 확대반도체·클라우드 등의 높은 진입장벽
    새로운 생산자의 등장 가능성소수 공급자에 대한 의존 가능성
    생산 과정에서 데이터 생성·수정·평가데이터 수집·활용 권한의 집중 가능성
    생산 역량의 확산소유와 시장지배력의 집중 가능성

    확산이 집중을 강화한다?

    생산 역량의 확산 자체가 핵심 생산 시스템에 대한 수요와 의존을 확대하고, 오히려 그 소유자의 경제적 영향력을 강화할 수도 있다.

    여기에 생산활동을 통해 축적된 데이터가 다시 AI의 성능과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데 사용된다면, 생산자는 기반시설에 비용을 지불하면서 동시에 그 가치를 높이는 주체가 될 수도 있다.

    반면 개방형 모델이 발전하고 공급자 간 경쟁이 심화되어 전환비용이 낮아진다면, 기존 기업의 시장지배력은 오히려 약화될 수 있다.

    어느 방향이 우세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다양한 플랫폼 생태계에서 유사한 시나리오를 알고 있다. 생산 역량이 확산된다는 사실만으로 경제적 영향력까지 자연스럽게 분산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겠다.

    생산의 성과는 어디로 향하는가

    생산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과 그들에게 돌아가는 소득이 함께 늘어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인간의 노동에 지불하던 비용 중 상당수가 AI와 핵심 기반시설의 사용료로 이동한다면, 생산에 따른 소득의 흐름도 달라질 수 있다.

    생산하는 사람은 많아지는데, 그 성과는 누구의 소득이 될까?

  • today’s bean

    에티오피아 시다마 보나 주리아 워시드

    Apricot/Peach
    Citrus
    Floral

    코만단테 26클릭

    Hiflux High Fast

    Hario Neo + Switch

    18g, 276ml, 2분 50초

    처음 60ml 30초 블루밍,
    중간부터 70도 침출식

    복숭아 혹은 살구향이 좋았다.

    ‘워시드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발효를 24시간 이상 했을까?’ 생각이 따라왔다.

    하이패스트는 코만단테 28클릭부터 미분이 많이 없어지기 때문에 미분을 감수하고 첫 잔을 테스트삼아 내려봤다.

    역시 후미의 미미한 떫은 맛이 생겨 홍차같은 느낌이 생겨버렸다.

    제법 단맛구간을 살리려고 했던 것 같은데 단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가격대비 아주 일품이다.

  • 빨강의 자서전 중도 포기

    시나 에세이, 소설, 탱고 형식까지 장애물이 되진 않았다.

    신화 속의 인물들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여 고전과 포스트 모더니즘을 융합한 것도 버틸만 했다.

    그 때의 인식론적인 접근도 받아들일 수 있으며
    독자가 능동적으로 작품을 끌고 해석하며 나아가는 것도 가능은 하다.

    내가 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문화’였고, 작가의 과도한 불투명성이었다.

    마치 서양인에게 ‘이박사가 칼바람에서 낧랔갔는덿 세탁 방송이 나와 빨래차에 장옷을 던져넣었네’ 를 던져놓는 느낌….같달까?
    <트롯트- (신)바람|(칼)바람 -롤, 나락이나 세탁이나 외국인들 못알아먹게 자음넣는 밈(Meme), 옛날 빨래차(“세탁~!”), 조선 중인 여성의 쓰개>

    경이로운 융합이라기엔 지금은 2026년이고,
    나는 너무도 멀리 와버렸다.
    내게 이 작품은 올드스쿨이었다.


    “규칙을 깨뜨려야만 표현할 수 있는 무엇이 있었는가?“

    -> 이제 한 번 답을 해보자. 읽은 티는 내야 하니 그녀의 형식으로.

    송판

    그랬을 것이다.
    그 시대에는.

    괴물은 귀엽게 다뤄지고
    과업과 숙명은 지루하다.

    성적 상처는 모두의 단어이며
    사랑과 욕망은 다양한 이름을 가진다.

    사진은 움직이
    영상은 잘리
    찰나마저 타이밍을 놓친.

    빛보다 각도,
    거리보다 순간.

    조각나 조립한 플라스틱
    송판을 다시.

    마른 박수.

  • 빨강의 자서전을 읽다가

    간만에 충격적이다.

    초반의 게리온과 형과 엄마가 나오는 장면들의 연속인데,
    하나하나 정말 충격적인 문장들이네.
    20%정도까지 읽어가다가 멈출 수밖에 없었다.

    헤라클레스의 12과업에 나오는 등장인물 게리온.
    뒤이어 다음의 단어들과 조합되는 문장들이 이어진다.
    버스와 담배, 통조림, 하키, 드라마.

    익숙한 방식으로는 문장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읽는 나 자신을 비판적인 태도로 분해해야 하나?
    애초에 그렇다고 해도,
    이 작품 자체가 독자가 이미 지니고 있는 인식의 전제를 겨냥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서사를 소모하며 소화하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철학적인 탐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실험적인 작품같다는 느낌도 있다.

    대체로 독자가 작품을 처음 대할 때엔 애초에 어느 정도의 마음가짐이 있는 상태에서 접근하는데, 그것조차도 깨버리려 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불문율, ‘오디세이’로 치면 제우스의 법을 어긴 느낌이 든단 말이지.

    그렇다면 그것은 별로 신선하지 않다.

    규칙을 깨뜨리는 것이 목적인가,
    아니면 규칙을 깨뜨려야만 표현할 수 있는 무엇이 있는가?

    이것이 지금부터의 내 쟁점이 될 것이다.

  • 달

    저녁 먹다가 문득 창 너머로 엿보이는 보름달
  • 261012 Github

    261012 Github

    하루에 485 commits 까지 갔다… 아직 하루가 끝나지도 않았다.